화도 조광운(花島 曺光云)

인천 화도동에서 태어났다.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향정신으로, 자신이 살던 마을 이름을 자신의 아호(雅號)로 사용했다.
일본인들의 통치 속에서 나라가 관리되고 있던 시절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내며 육영사업의 꿈을 키워 나갔다.   학문을 익히는 학교 마저도 일본인과 조선인을 철저하게 구분하며 운영되고 있던 시절, 그 서러움은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고 고통이 컸으며 환경도 열악했다.  
화도선생은 인천의 잡화상회의 점원부터 일본 도쿄시바우라(東京芝浦)전기회사의 연구원을 지내며 전자전기산업의 미래를 예측하였다.  유한회사 광운전기상회를 설립하고 국내 15개 이상의 지점을 포함하여 중국까지 상권을 확보하며 대한민국의 사업가로서, 그리고 전자공학의 선각자로서 성공했다.

조선무선강습소

화도선생은 나라를 잃은 서러움도 모르는데서 왔고, 일본인들에게 서러움을 받는 것도 무지한데서 왔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젊은이들을 상대로 배움의 길을 만들어 줄 기회, 기술을 익혀줄 기회를 만들기 기 위해, 자신이 살고 있는 봉래동 한옥을 본거지로 조금씩 넓혀 나가며 가르칠 공간을 확보했다. 
​그리고, 1934년 5월 21일 조선무선강습소가 설립되었다.  
"부지런 하자. 아끼어 쓰자. 찾아서 하자." 화도 선생이 직접 경험하고 느꼈던 생활 철학을 교육 목표로 삼았고, 이후 학교법인 광운학원의 설립훈이 되었다.  
​경성부(京珹府) 봉래정(蓬萊町) 1정목(丁目) 83번지(番地)에 교실을 꾸미고, 화도선생이 소장으로 취임했다.  화도선생 나이 35세였다. 

​해방과 6.25사변 - 연촌분교

해방이 된 이후 조선무선강습소는 대한민국 문교부로부터 정식으로 학교재단설립 인가를 받았다.  1946년, '조선무선초급중학교' 로 설립인가를 받고 이후 1948년, '조선무선중학교'로 한 단계 격상된 정규 과정을 밟을 수 있는 학교로 인가를 받아 자리를 잡았다.

1948년 8월에는 군정청 체신부로부터 연촌역(現 광운대역) 근처에 있는 연촌의 무선통신학교 건물을 무상으로 임대 받아, 동시에 3~6학년 학생들을 연촌교사에서 수업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연촌 건물 및 토지 모두를 인수하였고, 화도선생이 운영하던 사업 수입의 대부분을 연촌교사 시설 및 수리에 투자하면서 조선무선강습소의 연촌분교(지금의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가 자리를 잡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6.25 사변이 발발했고, 국가는 물론 광운도 큰 피해를 안게 되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공들여 세우고 힘써 일군 학교 건물 곳곳이 부서지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 밖에 없었다. 

전쟁 중에도 화도선생은 교육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대구로 잠시 피신해 있다 1951년 11월, 연촌분교로 돌아와 상황을 점검한 후 연촌분교에 있던 실습기자재를 모두 봉래동 교사로 옮기기로 결정 했다.  
 
1952년 3월, 임동순, 박하운 선생과 함께 야간강습소를 개설해 운영에 들어갔으며 7월에 들어서면서 학제 개편을 통해 남대문중학교와 동국무선고등학교를 분리 인가하였다.  남대문중학교 2학년, 동국무선고등학교 1학년 학생 각각 40명씩 약 80명을 모집해 다시 수업을 시작하였다. 

지금도 조선무선강습소, 조선무선공학원, 조선무선중학교 (現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의 동문들은 화도선생의 모습과 정신을 가장 뚜렷히 기억하고 있다. 

학교법인 광운학원-6.25사변 이후

6.25전쟁이 끝난 이후, 화도선생은 남은 자산을 모두 투자하여 교육에 헌신하였다. 
연촌분교에 위치한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를 기반으로 1962년 3월 31일, 지금의 광운대학교의 전신(前身)인 동국전자초급대학교를 설립하였다.

1964년 4월 24일, 화도선생은 재단법인 광운학원을 학교법인 광운학원으로 명칭 변경하고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이어 10월 5일, "동국전자공과대학"을 "광운전자공과대학"으로 교명 변경, 10월 30일에는 광운중학교를 설립하였다. 

이듬해인 1965년 10월 29일, 성북구 장위동에 월계초등학교(現 광운초등학교)를 설립하였으며, 1972년 5월 20일, 월계초등학교 바로 옆에 월계유치원(現 광운유치원)을 설립하며 종합 사립학교의 모습을 모두 갖추게 되었다. 

"대학 발전 10개년 계획" 수립

1972년 9월7일, 학교법인 광운학원 이사회는 직제를 개편하여 법인에 기획관리실을 신설하고 조무성 조교수를 실장에 위촉하였다. 

조무성 교수를 주축으로 법인 기획실에서는 대학의 운영에 집중적으로 힘을 쏟았다.  "대학 발전 10개년 계획"에 따라 미래의 캠퍼스 조감도가 제시되었고 종합대학으로 도약하기위한 발판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1974년 2월, 화도관을 필두로 19070년대 말까지 노천극장, 비둘기 집, 교문, 옥의관, 중앙도서관이 신축되었다. 

1976년 2월에 완공된 화도관은 설립자 조광운 박사의 아호를 빌어 명명된 것이고, 1978년 12월에 완공된 옥의관은 1976년 11월에 타계한 2대 이사장이며 설립자 조광운 박사의 부인인 이옥동 여사의 공로를 기려 붙여진 이름이다. 

 

 

제2의 창학 - 광운대학교

1987년 10월 19일, 문교부로부터 광운대학을 종합대학으로 승격한다는 확정 허가를 받게 되었다.

1988년 1월30일, 전체교수회의에서 종합대학으로서의 발판을 만들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조무성 교수가 만장일치로 광운대학교 초대총장으로 추대 되었다. 

 

조무성 초대총장은 취임식에서 제2의 창학시대를 맞아 학문의 종합화와 특성화의 균형 추구 그리고 학교 부지의 효과적인 운용 및 확충방안을 추진해 갈 것이라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 

또한, 대학에 '종합대학 실행 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키며 학사분과위원회(위원장: 이준웅 교무처장), 제도개선 및 홍보분과위원회(위원장: 문동찬 기획관리실장), 사무행정분과위원회(위원장:윤을송 사무국장), 학생지도분과위원회(위원장:강승언 학생처장)를 조직하여 모든 학사와 교무 행정의 변화에 대비하게 하였다. 

1993년 입시부정 사건

1993년 2월, 교육부 감사에 의해 전국 52개 대학에서 모두 1,400여명을 부정 입학시키고 기부금 명목으로 수백억 원에 이르는 돈을 받은 것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부정입학에 연루되었던 수 많은 사립대학들은 모두 주의나 경고 등 가벼운 징계가 내려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광운대 역시 교육부의 징계가 내려졌지만, 다른 대학들과는 달리 광운대 사건에 대해 주요 일간지들은 한 달에 걸쳐 "광운대 입시부정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법원은 광운대 관계자들이 학부모로부터 받은 70억여원을 "광운발전기금" 통장에 그대로 보관하면서 돈을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고 학교를 위해 사용했기 떄문에 배임수재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법원은 70억여원에 대한 몰수 여부, 배임수증재 협의와 업무 방해 험의를 두고 검토하다 결국 1993년 3월, 광운대 관계자들에게 업무 방해죄를 적용했다.  

학교법인 광운학원 이사회(이사장 이영구)는 심장병 수술로 1992년 12월부터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조무성 초대총장에 대해 1993년 3월 23일 총장직을 징계 파면 했다. 

관선이사 체제 - 14년

1997년 1월 21일, 학교법인 광운학원은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임원을 선임할 수 없는 실정이되어 교육부에 임시이사 선임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하였다.  이에 1997년 2월14일, 교육부는 직권으로 정이사 탁희준, 강준길, 손성희 3인을 해임하고 관선이사 7인 전원을 파견하였다.  

1997년 5월 24일, 관선 이사회(관선이사장 이세중)의 권고로 제4대 강준길 총장이 사임하고 6월 12일, 관선 이사회는 '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총장후보추천위원회는 9월 26일 총장후보 3인을 관선 이사회에 추천하였고, 관선 이사회는 1997년 10월 1일, 제5대 총장으로 박영식 전 교육부장관을 추대하였으며 2000년 1월, 박영식 총장을 임시이사로 선임하였다.

2000년 6월, 관선이사 체제에서 법인 총무과장 및 대학의 기획관리부장을 겸직하고 있던 조석진에 의해 법인 및 대학의 약 138억원대의 대형공금횡령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교육부는 관선이사진 전원에 대해 사임서 제출로 사건을 마무리 하고 새로운 관선이사를 파견했다. 

2001년 1월, 광운대학교는 UI 사업을 통해 교표를 변경, 8월 9일 관선이사회는 총장정년에 관한 정관을 변경하였고 2001년 10월 8일, 박영식 제5대 총장을 제6대 총장으로 재선임하였다. 

이후, 관선이사회(이사장 강문규)는 광운대학교(총장 이상철)와 "학교법인 광운학원 법인정상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일간지에 학교법인 광운학원 운영참여자 공모를 통해 2005년에는 (주)부영건설, 2007년에는 유진그룹 유재필 명예회장, 2008년에는 효자원 유상식 명예회장 과 법인 운영참여에 관한 협약서 등을 체결하였지만 무산되었다. 

학교법인 광운학원 정상화

2006년 4월, 교육부는 임시이사 선임법인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통보하였다.  그 결과 학교법인 광운학원에 파견된 임시이사회의 전문성 및 소신 부족, 그리고 임시이사 선임사유가 해소되었음에도 정상화 추진이 미흡하거나 또는 학생모집 어려움 등 다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조속한 학원정상화를 위한 협조 요청을 하였다.  

 

그러나 임시이사회는 정상화 방안으로 운영참여자 공모 등을 통하여 교육부가 요구하는 정상화를 지연시켜갔다. 결국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학내 구성원, 상당한 재산 출연자 및 학교발전에 기여한 자 등 이해관계인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2011년 1월 17일 학교법인 광운학원의 정상화를 결정하였다.  

학교법인 광운학원

주소 : 서울특별시 노원구 광운로 20

Phone: 02-940-5007~8

​Fax: 02-918-5681

​E-mail: sewon@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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